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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지혜/가정-사회

리더십 관점의 히틀러와 처칠 차이점 비교

by 인생-꿀팁 2023. 11. 12.

서문

감사하게도 많은 경영자 교육, 리더십 교육과 인간관계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던 저로서는 매우 친숙한 두 사람입니다. 그만큼 여러 교육 자료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리더십 측면을 한 번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턴 처칠

처칠은 1874년 영국의 유명 귀족이면서 대대로 정치가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청소년기는 낙제생에 문제가 많은 말썽꾸러기였습니다. 학업 성적도 역사 이외에의 다른 과목들은 모두 형편없었는데 특히 수학을 못하였습니다.

 

결국 수학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를 입학하면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로서 각종 전투에 참가하여 활약을 펼쳤고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도 여러 매체에 내면서 서서히 화려한 명성과 함께 대중적 지지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의 해군 장관이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수장인 총리가 됩니다. 그는 진실되고 화려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언변으로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전장의 병사들의 용기를 고무하고 독려함으로써 독일의 영국 침공을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이겨내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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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더 나아가서는 전후 스탈린의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진영 전체를 리드하기도 하였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 시의 최고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수많은 경험과 역사 지식, 글 쓰는 재능을 통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처칠의 리더십은 힘든 시기에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특유의 유머와 다른 각료들과도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들의 집합체였습니다. 처칠은 지휘관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휘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정책 결정에 대해서도 참모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앨런 브룩이라는 반대파 인력을 참모 총장에 임명했던 사례는 유명합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참모총장을 설득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점검하고 확인하고 몰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처칠은 자신의 판단 오류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세관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현모양처 스타일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미술 학교 시험에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모두 낙방하였습니다.

 

이때 미술학교에 합격을 했다면, 그래서 화가 히틀러가 되었다면 세계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는 이래서 무섭고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그가 급변하게 된 계기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망과 1차 세계대전의 패배였습니다. 그는 본인의 화가가 되는 꿈의 실패와 1차 세계 대전의 패배가 유대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미래에도 유대인들이 독일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음에도 독일에 대한 열망으로 독일군에 입대했으며 공적을 세워 철십자장을 받고 제대한 후 탁월한 언변과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가로 변신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연설의 대부분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유대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으며 유대인과 그들을 돕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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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그러나 이것은 1차 대전 패전 후 비참해진 독일의 속죄양을 찾고 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이후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나치당의 수장, 총통이 되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였습니다.

반듯한 가르마 헤어 스타일의 히틀러는 이전의 화가 지망생에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카리스마와 주도 면밀한 성격, 화려화 웅변을 통해 전체 국민을 선동하여 2차 대전을 일으키는 대담한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리더십은 그의 패전과 자살을 암시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권력이 확장되고 견고해지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길 원했습니다.

 

히틀러는 독일 내의 반대론자들도 모두 잔인하게 숙청하고 제거하였으며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도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지휘관들의 의견을 무시하였습니다. 한 때 부하들에 의해 암살될 위기까지 맞는 리더십의 전체 기반이 허물어지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리더십의 차이

처칠과 히틀러의 공통점은 화려한 언변과 설득력이라고 볼 수 있으나 리더십을 비교해 보면 두 가지가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를 주는 유머입니다. 처칠은 수많은 유머로 영국민과 병사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였으나 히틀러는 몽환적 선동과 카리스마 강한 웅변이 전부였습니다.

 

두 번째는 국민과 부하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처칠은 수평적인 동등 관계를 지향하였으나 히틀러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상하 복종 관계를 강요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처칠의 리더십은 역사의식과 자유사상이 그 바탕이었고 히틀러의 리더십은 병적인 과대망상을 상황 논리의 웅변과 선동으로 실현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래 글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리더십 관점의 히틀러와 처칠 차이점 비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다른 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